책 후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봤었던 추천도서 중 하나로 기억이 된다. 요즘 독서를 자주 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몸이 피곤하고, 신경 쓸 일들이 많다 보니까 그런 여유가 나오지 않았다. 우선순위를 독서에 두고 생활하려고 해도 사실 녹록치 않은 현실이다. 가족을 돌보고 내 자신을 돌보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자기 전 30분씩 책을 읽으려고 한다. 나는 여러가지 책을 동시에 보는 편인데, 한 책을 잘못 집었다가 읽기 싫어져 책 읽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벼운 책과 어려운 책을 병행해서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올해 초 목표는 독서 50권이 목표였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일도 바쁘고, 가족에 신경을 많이 들였다. 아무튼 다시 마음 잡고 열심히 독서하자는 의미이다.
책의 내용을 소개한다.
태아, 노예, 군인, 그리고 사형수의 예는 사람의 개념에 내포된 인정의 차원을 드러낸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실종자의 예에서 보았듯이 특정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어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사회란 다름 아닌 이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는 ‘현상 공간’이다. 이는 사회가 고정된 지리적 경계를 갖지 않음을 함축한다. 아렌트가 폴리스에 대해서 말한 것은 사회에도 해당된다.
주인과 노예
인정투쟁이라는 단어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대한 헤겔의 논의와 거의 자동적으로 결부되는 경향이 있다. 정신현상학 4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해설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을 타자의 인정을 욕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 인간을 모든 동물에게 공통된 자기 보존의 욕구를 극복하고 이 인간적인 욕구를 따를 때, 즉 타자의 인정을 위해 생명을 걸 때 비로소 자신을 인간으로 확증한다.
주인은 노예의 인정을 받지만, 그가 획득한 인정은 그에게 무가치한 것이다. 그의 욕구는 그가 인정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의 인정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노예는 주인을 인정한다. 따라서 상호 인정이 발생하기 위해서 노예는 단지 스스로를 이 타자에게 강요해서 그로부터 승인받기만 하면 된다. 주인은 노동하도록 노예를 강요한다. 그러나 노동하는 과정에서 노예는 자연을 지배하게 된다. 노예는 이제 자신의 노동에 의해 변화된 기술적 세계에서 군림한다. 노예는 세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와 더불어 해방투쟁을 위한 새로운 객관적 조건들을 창조해낸다.